새해 마음 안에 부는 바람


늘 그랬듯 뭐 별 것 있나 싶게 새해를 맞았다.
그래도 늘 그랬듯 마음가짐은 달리 해본다.

올 한해는 지난 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마음으로 바라 본다.
새삼 지난 과정에 대해 새롭게 되새기고, 또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황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감사한 일이다.

오늘 문득 든 생각은-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데,
나는 절대 고정된 레파토리로 이야기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였다.
썩어 버릴 고인 물이 아닌, 늘 힘차게 흐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새로운 에너지의 순환이 느껴지는 요즘,
이 에너지를 어디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또 다시 머리는 좀 아프겠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고민의 시작이다! :D

'오름'은 지금 제대로 네팔 여행 중!


희망의 경계_ 프란시스 무어 라페. 안나 라페 성찰적 사고(독서메모, 자료)

희망의 경계 (HOPE’S EDGE)

- 풍요로운 세계에서의 빈곤과 굶주림의 역설

프란시스 무어 라페. 안나 라페

시울 (2005)

 

 

마지막 장을 읽기까지 거의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요즘 나태와 게으름에 허우적대며 책을 멀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_-;;

어찌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머리에 담고 싶은 내용이 많던지- 몇 번을 읽었나 모른다.

(쓰고 보니 이건 핑계인 듯. 그렇게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들은 많지 않네 -_-)

 

어쨌든 나에게 이 책의 저자가 주었던 메시지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결핍의 문제에 대한

머리와 마음을 함께 쓰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은 저자가 만난 이러한 대안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인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현재까지의 나의 발상이 굉장히 나이브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식량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통해서도 이상에 닿는 현실적인 실천이 가능함을

저자는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부조화의 순간을 느낀 후, 현재까지 줄곧 걸어왔다면-

그 길 위에서 늘 무언가 구체화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는데-

이 책은 뭐랄까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기 보다는, 그 갈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어

결국 갈증을 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전해주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산 넘어 산이다!

 

앞으로도 몇 번은 공부하며 읽어야 할 책이고, 연결되어 찾아볼 자료도 풍부하다.

국제개발이라든가, 원조라든가- 어쨌든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

 


 

[아래는 몇몇 부분들 발췌- 중간에 포기한 부분도 많은데, 전체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밝힘!]

 

풍요로운 세계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굶주림은 우리 시대의 역설이다. 우리는 마음 한구석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무엇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어느 한 순간에서 바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그 짧은 찰나에 우리가 부조화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의 세계가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마음 한구석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했던 테러가 촉발한 전 지구적 규모의 부조화와 균열. 이럴 때 우리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세상이 근원적으로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외면하고 묻어둔 채, 우리의 자아가 원치 않는, 터무니없게 익숙해진 공포만이 재생산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다른 선택, 곧 희망을 선택할 것인가?

 

희망을 선택하는 것은 의식의 모험이다.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관념을 똑바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간 생략) 날이면 날마다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자연과 생물이 함부로 유린당하는 세상을 용인하는 것은 어떤 신념에 기반한 것인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단축케 하는 빈곤으로부터의 이익 추구 싼 식량과 싼 연료, 싼 장식품 등 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신념 체계인가?

 

이 책은 우리의 내적인 삶 우리의 깊은 감수성과 욕구 과 우리가 실제로 만들고 있는 세상 사이에는 근원적인 단절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 단절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든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되었다. 정당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나 자신의 신념 체계에서 무엇을 재검토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의 행동을 나의 근원적인 가치와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종류의 희망은 깨끗하고 정돈된 것이 아니다. 정직한 희망은 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번거로울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석 해결책이나 선입관에 사로잡힌 공식, 혹은 우리의 항해가 무난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휴식을 취하는 지점이 아니다. 정직한 희망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리는 내면의 힘을 갖춤으로써 이전에 우리를 소외시키던 거대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가장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이 관념의 함정은 가급적이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표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더 넓은 세상에서의 효율인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직계가족 이외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쉽지 않게 만든다.

 

효율적이고 창조적일 기회를, 그리고 관계를 맺을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위축되지 않는다. 아니 우리 인간은 그러기에는 너무 약삭빠르다. 우리는 대용품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 대용품은 찾기 쉬운 곳에 있다. 세상은 매년 6000억 달러 이상을 퍼부으면서 우리에게 대용품을 찾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광고는 우리의 깊은 욕구를 마비시키고 그냥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한다. 광고는 소유물을 통해 최소한의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고 주위에 체면을 차릴 수 있다고 속삭인다. 물건을 쟁여두는 것으로 공동체적 연대감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라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끔 하고 있다. 그런 부인은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진정 우리가 누구인지 표현하지 못하는 두려움.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관념의 함정을 재검토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

 

우리 누구에게나 내적 부조화를 일깨워 줄 사람들이나 사고나 사건에 접할 기회가 있다. 뭔가 더 이상 맞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그 특별한 순간에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불편한 감정을 억누를 것인가? 혹은 거기에다 귀를 기울이고 단절을 자세히 살펴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도약을 할 것인가? 그러한 도약을 하는 데 출발점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부조화의 순간과 출발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다르게 일어나게 마련이다. 나를 움직였던 어떤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살아있는 민주주의센터를 설립했을 때 나는 민주주의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에게 민주주의는 우리가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정말로 흥미롭고 살아있는 실천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란 여전히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우리에게혹은 우리를 위해뭔가가 행해지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별로 재미있는 소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안나와 나는 사람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출발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관심과 자원, 기후, 문화, 그 밖의 모든 것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은 모두 지배적인 세계관에서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다섯 가지 관념의 함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서는 강한 동기가 필요하다. 그런 동기를 찾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자신의 간절한 열망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진정한 공동체와 효율성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p 208. 방글라데시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선하고 긍정적인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희망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희망은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이다. 그것을 딛고 설 수 있는 받침대가 아니라 행동이다. 그것은 운동이다. 희망은 그 모든 것의 번잡함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것은 경청하는 것, 배우는 것, 노력하는 것, 엎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출발이며 모순투성이 증거이다.

 

Roland Bunch, “An Odyssey of discovery: principles of agriculture for the humid topics.” ILEIA Newsletter Vol. 11, No. 3, October 1995.

 

식량 안보

 

반다나 시바 박사- 나브다냐 운동

 

포커스

지역민의 화합, 공동체성의 회복

지역민의 문화 보존과 재생산

그렇다면 어떠한 문화?

 

여전히 너무 한국스러운 것은 아닌지?

 

p 213. 그것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지혜 속에서 함께 일하는 능력을 개발해 해결책을 찾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또한 계급과 카스트와 식민주의의 유산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새로 획득해야 하는 기술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땅도 직업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더 차별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P 263. 마틴 셀리그먼 학습된 무기력

 

P 269. ‘가계 식량 안보’ by 그린벨트 운동(왕가리)

 

P 279. 왕가리에게 시민교육은 추상적이고 거리가 먼 권력 구조나 절차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자신감,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민교육을 자각이라고 부릅니다.” 왕가리가 설명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선택가능하다는 내적인 자각

 

P 360. 변화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다. 존을 비롯한 우리가 만나고 있는 농부들은 변화해서 성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웃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믿지 못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방식과 그것의 효율성은 아직까지도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마음의 용기란, 무서운 경험을 하더라도 냉혹해지지 않는 것, 너무나 많은 나쁜 소식을 듣더라도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 너무나 많은 참담한 현장을 보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란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을 압도할 때라야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희망은 현실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내부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희망은 도약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지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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